Z세대는 왜 흑백필름에 빠질까? 레트로 아닌 느린 저항의 시대

라이카(LEICA) M6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로, 블랙 바디에 빨간 라이카 로고가 특징적입니다. 수마릴룩스(Summilux) 렌즈를 장착하고 있는 이 카메라는 전문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고급 필름 카메라입니다.


1. 디지털 시대의 역설, 필름카메라를 드는 Z세대

스마트폰 한 대면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예요. 언제 어디서나 고화질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즉시 공유할 수 있는데도 요즘 Z세대의 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구식 필름카메라가 들려있어요. 특히 흑백필름이라니. 왜일까요.

인스타그램에서 필카, 흑백필름 해시태그는 매일 수만 개씩 늘어나고 있어요. 중고 거래 앱에서는 20-30년 된 필름카메라가 몇 배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죠.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Z세대가 오히려 아날로그를 택하는 이유, 단순한 유행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요.

최근 할아버지 서랍에서 발견한 오래된 니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디지털 사진 수백 장보다 필름 한 롤이 주는 특별함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대학가 주변에서는 필름 카메라를 든 Z세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홍대, 이대, 신촌 일대에서는 주말마다 필름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누비는 Z세대로 가득해요.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된 시대에 이런 현상은 분명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Z세대만의 특별한 이유가 숨어 있어요.


2.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에 지친 마음들

하루에도 수백 장씩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요.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죠. 무한 스크롤, 끊임없는 알림, 과잉 연결된 디지털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즉시 편집하고 즉시 공유하는 문화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요. 사진을 찍은 후 바로 필터를 고르고, 좋아요 수를 확인하는 과정이 경험 자체를 변질시킨다는 거죠. 알림이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주의력을 계속해서 분산시키고, 깊은 몰입을 방해해요.

저도 여행 중에 인증샷 찍기에 바빠 정작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요. 사진 찍기와 공유하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그 순간의 감동은 놓치게 되더라고요.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Z세대는 역설적으로 그 환경에 가장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늘 연결되어 있고, 늘 반응해야 하고, 늘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가 상당하죠. 이런 디지털 피로는 Z세대가 오히려 아날로그적 경험을 갈망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예요.


펜탁스(PENTAX) 17 필름 카메라로, 실버와 블랙 바디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컴팩트한 사이즈에 40.5mm f/3.5 렌즈가 장착된 필름 카메라입니다.


3. 불편함이 주는 특별한 매력, 흑백필름

흑백필름의 매력은 역설적으로 그 불편함에 있어요.

36장만 찍을 수 있으니 한 장 한 장이 소중해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정말 생각하게 돼요.

촬영 후 바로 결과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몰입감을 줘요. 현상을 기다리는 시간, 그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돼요. 빛 번짐, 우연한 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비완벽한 기록이 매력적이라고 해요.

특히 흑백은 색상이라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구도와 질감, 빛과 그림자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요. 이런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거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어되는 디지털 세계와 달리,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주는 설렘도 있어요.

지난 주말, 오랜만에 흑백필름으로 촬영해봤는데 현상된 사진을 받기까지 일주일을 기다렸어요. 그 기다림이 사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았어요.

흑백필름의 또 다른 매력은 장비의 단순함이에요. 화려한 기능으로 가득한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오래된 필름 카메라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기능만 갖추고 있어요. 이 단순함이 오히려 사진의 본질, 즉 빛과 그림자를 포착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요. 복잡한 설정에 신경 쓰지 않고 순간을 포착하는 데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Z세대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해요.


여러 흑백 사진들이 담긴 필름 스트립 또는 콘택트 시트입니다. 숲과 나무들을 담은 여러 장면들이 필름 프레임 형태로 정렬되어 있어, 필름 사진의 물리적 특성과 촬영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4. 단순한 복고가 아닌, 의식적인 저항

그냥 레트로여서 좋아요가 아니에요. 숨 쉴 공간이 필요해요라는 말이 더 정확해요.

Z세대에게 흑백필름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과도한 디지털 자극으로부터의 탈출구이자, 자신만의 속도를 찾기 위한 도구예요. 디지털 세계의 속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템포를 찾는 작은 혁명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온라인 필름 커뮤니티에서는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반감을 종종 볼 수 있어요. 많은 Z세대들이 지친 마음을 아날로그적 체험을 통해 회복하려 한다고 해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시도인 셈이죠.

필카 마니아들을 인터뷰해보면 공통적으로 디지털 세계의 완벽함보다 아날로그의 불완전함을 더 진실하게 느낀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것은 완벽해 보이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대한 반발이기도 해요.

Z세대의 필름 카메라 열풍은 SNS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는 종종 #필름없는필름카메라, #디지털디톡스 같은 해시태그가 붙어있어요. 이런 태그들은 단순한 취향 표현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선언처럼 느껴져요. 그들은 필름 카메라를 통해 디지털 세계와 잠시 분리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5. 중고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필름카메라 열풍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리코 GR1, 콘탁스 T3, 라이카 M6 같은 빈티지 카메라 검색량은 전년 대비 300% 이상 증가했어요. 특히 Z세대 사용자가 주 구매층이에요.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생겨난 필름 현상소들은 단순히 사진을 인화하는 공간을 넘어 커뮤니티 역할을 해요. 감성 스캔본, 현상소 후기를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필름 사진 전시회와 워크숍도 늘고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활동들이 다시 디지털로 연결된다는 거예요.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고, 스캔한 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과정이 하나의 순환 고리를 이뤄요. 완전한 단절이 아닌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죠.

지난달 충무로의 한 필름 현상소를 방문했는데, 대기 시간에 모인 Z세대들끼리 카메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온라인에서 시작된 관계가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특별한 순간이었죠.

중고 필름 카메라 가격은 몇 년 사이 크게 뛰었어요. 5년 전만 해도 몇만 원에 구할 수 있었던 빈티지 필름 카메라들이 지금은 수십만 원, 심지어 수백만 원에 거래되고 있어요. 이런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Z세대의 구매는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희소성 있는 카메라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이 되고 있죠.


컴팩트한 검은색 콘탁스(CONTAX) 필름 카메라로, 칼 자이스(Carl Zeiss) 렌즈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28/35mm 소너(Sonnar) 렌즈를 사용하는 고급 필름 카메라입니다.


6. 느린 취미로서의 사진, 과정의 가치

흑백필름 열풍은 느린 취미의 부활이라는 더 큰 흐름 속에 있어요. 러닝, 독서, 필사, 베이킹 등 속도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활동들이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요. 결과물보다 그 과정이 주는 만족감이 커요.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과정을 경험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뚜렷해요. 디지털이 주는 즉각적 만족감 대신,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거예요.

이런 느린 취미는 명상적 효과도 있어요. 셔터를 누르기 전 숨을 고르고, 구도를 잡고, 빛을 느끼는 과정은 일종의 마음 챙김 연습과도 비슷해요. 현대인의 산만한 정신을 한곳에 모으는 데 도움이 되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평소에는 지나치던 작은 풍경들에 주목하게 되는 경험을 했어요. 디지털 카메라로 무작정 찍을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Z세대의 느린 취미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고 있어요. 빠른 답변, 즉각적인 만족감,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선택이 되고 있는 거죠. 필름 사진 찍기, 손글씨 쓰기, 비닐 레코드 듣기 같은 아날로그 활동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디지털 네이티브들 사이에 독특한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7. N포세대의 작은 저항, 선택적 몰입

한국의 Z세대는 특히 독특한 맥락을 가져요. N포세대로 불리며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이들에게 선택적 몰입은 하나의 생존 전략이에요.

한 장에 천 원이에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천 원짜리 지폐를 쓴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요.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자극을 차단하고, 특정 순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가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 속에서, 적어도 자신의 취미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즐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해요.

이런 태도는 소비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요. 많은 것을 가지기보다 적지만 의미 있는 것에 투자하는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과도 연결돼요. 대량생산된 상품 대신 독특한 스토리가 있는 물건을 선호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죠.

한국의 Z세대는 취업,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는 의미의 N포세대로 불리고 있어요.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영역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요. 필름 카메라는 그 작은 영역 중 하나예요. 불확실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세계와 달리, 필름 사진에는 자신만의 시간과 시선이 온전히 담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흑백으로 촬영된 예술 사진으로, 실루엣 형태의 사람 그림자가 질감 있는 배경 위에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흑백 필름의 특유한 질감과 대비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8. 느림의 미학, 의식적 선택으로서의 흑백필름

흑백필름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디지털 과잉시대에 대한 가장 Z세대다운 반응이에요.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를 더 깊게 경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에요.

감성적 취향이라기보다는 의식적인 탈속도화의 선택이에요.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순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는 거예요.

흑백필름은 색상이라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본질에 더 집중하게 해요. 마치 스마트폰의 알림을 끄고 방해 요소를 줄이는 것처럼, 불필요한 시각적 자극을 줄이고 형태와 질감, 빛과 그림자에 집중하게 되죠.

혹시 여러분도 오늘, 흑백필름 한 롤의 느린 기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36장의 제한된 기회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것은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버린 집중력과 몰입감을 되찾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어요.

디지털 세상에서는 한 번의 클릭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바로 지울 수 있지만, 필름 한 장에는 그런 가벼움이 없어요.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더 진지하게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Z세대가 찾는 것은 가벼움이 아닌 무게감, 빠름이 아닌 느림, 효율이 아닌 의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 여정에서 흑백필름은 하나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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